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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6일(월) 마이니치 신문기사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한일관계의 깊고 긴 상처

9/16(月) 10:00配信

[사진}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8월 하순에 서울에서 개최도니 "한일포럼"에 참가하였다. 양국의 정치가나 연구자, 져널리스트등 50명 정도가 만나는 년1회의 회의다. 최근의 정치상황을 고려하여도 이상한 것이지만 커피타임의 대화에서도 "정치가를 포함하여 한일 상방모두 자제하는 발언이 많네"라는 소리가 들렸다. 【外信部長・澤田克己】

 최근 수년은 서로가 "상대에게 항의한다"라고 하는 발언이 눈에 띄었다는 기억이 있지만, 현실이 너무나 나쁜 상황이기에 신중한 발언이 늘었다라고 생각해 버릴 정도이다. 그 가운데 인상에 남는 말이 "이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배경을 생각해 보고 싶다.

 ◇「관계가 좋거나, 나쁘거나」한 것이 아니다

 한 세션의 기조발표에 이야기된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최근의 한일관계에 있어서 한국은 일본이 중시하는 신뢰를 잃어버렸고, 일본은 한국인 중시하는 예을를 잃었다. 그 결과 이번의 대립은 깊과 긴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대립을 개선하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발언은 임팩트가 컸기에 많은 출석자가 긍정적으로 인용하면서 발언을 하엿다. 나는 징용공소송과 수출규제에 의한 대립을 기점으로 한 점에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만, 방향성에서는 공감한다. 다른 참가들들로부터도 「한일관계는 전화점에 서있다」라고 지적되었다.

 회의에서는 한일 양국이 기본저약이나 청구협종을 체결하여 국교정상화 하였던 1965년과 현재에는 정세가 완전히 다른다는 지넉도 적지않았다. 당시는 가난한 소국이었던 한국이 힘을 키워 일본과 대등한 파터너가 되었있음에도 그러한 구조적 변화에 쌍방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냉전이 끝나고 30년간 일어난 변활는 크기에 그러한 변화는 한번에 표면화하는 것이 아니아. 최근 수년의 대립격화는 그러한 큰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관계가 좋았다가 나빴다가」하는 순환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리를 식히고 냉정한 주시가 필요

 1인당 국민소득을 세계은의의 데이타(금년7월시점) 비교해 보면 65년시점에는 일본 890달러, 한국 130달러. 과거에는 한일의 격차가 7배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다. 30년전인 89년에도 5배이상의 격차가 있었지만 그이후에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일본의 버블 붕괴에 따라 급속히 격차가 축소되었다. 20년전이 99년에는 3배 이상, 10년전인 2009년에는 2배 까까이 되었다. 지난해 일본 4만1340달러, 한국 3만600달러로 격차는 1.35배이다.

 냉전종결이 한국에 미쳤던 정치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냉전의 최전선에 있었던 65년 당시의 한국은 미일에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고, 중국이나 소련등과는 국교조차 맺고 있지 않았다. 한국과 북한이 국제연합에 공시가입한 것은 91년이다. 한국은 그 이후 경제력의 신장도 있었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도 단단해져 왔다.

 87년의 한국민주화도 무시할 수 없다. 65년당시의 한국은 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쥔 박정희 정권으로 국민들 사이에 불만이 있어도 힘으로 눌러왔다. 민주화투쟁 출신자가 핵심을 점한 문재인 정권은 당연하지만, 현재의 보수당이 정권을 쥐었어도 박정희과 같이 여론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전후 70년 이상이 지나서 식민지시대로부터 이어 온 양국간의 인맥은 없어졌다. 그 시점에는 정치적 긴장이 있어도 일본어 세대의 한국인 정치가나 경제인을 중심으로 한 파이프라 관계회복을 위해서 기능하였지만, 다음세대의 파이프는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한 상황이 겹쳐서 한일관계는 완전히 전망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졌다. 애초에 상황이 이전과 다르기에 「이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징용공 소송에 대한 한국 대볍원의 판결이 청구권 협정과 모순되는 것이 명백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로서 현실의 변화를 냉정하게 지켜보면서 새로운 한일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은 감정적인 대응이 되지 않도록 머리를 식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